어제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을 벙커1 근처에서 오다가다 서너번 쯤 마주친 것 같다.
처음엔 주차장에서 김어준을 보고도 막상 뭐라고 해야하나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지나쳤고. 두 번째엔 축 쳐져서 사람들 시선도 피하며 들어오는 김용민에게 뭐라도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욕심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너무 쿨하게 얘기해 버렸다. 마치 모든 게 끝난 것처럼.
그렇게 후회하다 행사 끝나고 자정 무렵 자리 옮기면서 또 길에서 마주친 주기자에게 비로소 "고맙습니다."라고 얘기했다. 주기자가 "어어~" 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머쓱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단언하건대 난 그 사람들을 존경하고 섬기고 떠받들고 맹신하는 상태가 아니다. 취한 사람이 자기 안 취했다고 말하는 상황으로 몬다면야 할 말이 없으나. 어쨌든 나꼼수에 IT 관련 이야기가 다뤄질 때면 어느 때보다 날을 세워 걸러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은 조금이라도 아는 분야니까.
근데 꼭 정치 얘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일부러 옆에서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상 평생 모른채 살았을 수도 있는 얘기를, 치밀하고 다양하게, 각자의 상식에 입각해 IT 얘기만큼이라도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짚어주었다는 점에 감사하고 그 부분에서부터 일종의 채무의식이 생긴 거다. 선거 결과가 어쨌든,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든 관계 없이 말이다. 그래서 그냥 고맙다는 말 한 마디에 빚을 더는 기분이 들었던 거고.
많은 주장과 근거들로부터 스스로의 견해를 세우는 건 결국 취합하고 사고하는 본인의 몫이다. 거기엔 누구 말대로 선입견이 크게 작용하겠지. 근데 최소한 어떤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혹은 무식해서 용감하게 판단해버리지 않도록 정보가 부족하진 않아야 할텐데, 그런 정보를 취합하기 어려운 분야들이 있기 마련이고, 특히 누구나 말 한 마디씩 얼마든지 보탤 수 있는 정치라는 분야에 그 정보를 제공한 게 내 경우엔 그들이다.
내가 좌편향된 가치관을 가지게 된 게 그들 탓이 아니라. 그런 가치관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정보를 준 게 그들 덕이다. 그래서 감사했다.
... 라고 어제 생각했던 걸 지금에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