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3, 결혼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 동료들로 북적이는 결혼이었고, 오전까지 무덤덤하던 감정은 예식 시작 30분전쯤부터 손님들이 몰리면서 한껏 들뜨더니 폐백 드릴 쯤엔 가슴팍이 아릴 정도로 혼을 빼놨다. 별 실수 없이 무난하게 진행되어 다행이었는데, 믿었던 사회와 축가가 한 건씩 해줘서 굳이 재미를 보탰다. 부모님께 인사 드리는 순서에선 엄마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최대한 다른 곳을 봐야만 했다. 이상하게, 언젠가부터 부모님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살짝만 센치해져도 먹먹해져서 눈물이 나곤 한다. 천만다행 울진 않았다.

신혼여행은 중간중간 사소한 조율 과정이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일들을 95% 쯤 잊은채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현지에선 나름 노느라 바쁜 일정이었지만, 그게 어디 진짜 바쁜건가. 놀다 지치면 자고, 먹다 지치면 자고... 왜 돈을 벌어야 하고, 왜 시간을 내서 길게 여행 다니는 것(그것도 해외로!)이 누군가에게 로망으로 꼽히는지 새삼 이해할 수 있었던 여행. 며칠 머무니 영어도 그럭저럭 필요한 얘기들 할 수 있을 정도는 잘 나오더라. 작정하고 돈을 썼음에도 사치하지 않고 필요한 것들만 적당히 소비해준 점에, 따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감사하고 기특해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와 양가에 인사 드리고 하루씩 잠을 자면서 비로소 정말 서로의 가족이 됐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축의금 봉투와 방명록을 정리하면서 인생 절반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대략 정리할 수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과 수많은 변수들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그것들을 이유 삼지 않고 직접 걸음해 준 분들은 내게 분명 그 만큼의 가까운 마음이 더 있으리라 본다. 나 역시 앞으로도 지금처럼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어야겠고.

채 소식을 전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미안한 마음.
그리고 그 정신 없던 와중에도 떠오르던 몇몇 얼굴들에겐 특별히 감사한 마음.